- AI 와 작업을 쪼개서 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 어디까지 됐는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 기억력 문제가 아니라 기록이 대화 안에만 있어서 생기는 문제였어요.
- 대화 밖에 세 줄만 남기기 시작했더니, 그중 막혔던 지점과 그때 시도한 것이 제일 값졌습니다.
지난 편에서는 AI 에게 시킨 일이 왜 자꾸 절반만 끝나 있는지, 작업을 어떻게 쪼개는지를 적었어요. 한 번에 다 시키지 않고 작게 나눠 던지기 시작하니 결과물이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주를 지내다 보니 전혀 다른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조각이 늘어난 만큼, 그 조각들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가 헷갈리기 시작한 겁니다.
어느 날 저녁에 화면을 덮으면서 스스로 물어봤어요. 오늘 뭘 끝냈고 내일은 뭐부터 하면 되지. 그런데 대답이 안 나왔습니다. 분명 서너 시간을 앉아 있었고 진도도 나갔는데, 그게 한 문장으로 정리가 안 되는 상태였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그 상태 그대로 다시 앉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마다 30분은 어디로 사라질까요?
제 아침은 대체로 이렇게 시작했어요. 어제 열어둔 대화창을 켜고 위로 한참 올려봅니다. 중간쯤에 뭔가 결정한 것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그게 실제로 반영된 건지 이야기만 하다 만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파일을 열어보고 한 번 돌려보고 나서야 겨우 감이 잡힙니다.
그렇게 상황 파악만 하다가 삼십 분쯤 지나갑니다. 실제로 손을 대기도 전에 커피 한 잔이 사라져 있는 거예요. 문제는 이게 하루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작업을 잘게 쪼갤수록 조각은 늘어나고, 늘어난 만큼 어제 어디서 멈췄는지를 확인하는 시간도 같이 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유난히 잘 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며칠 지켜보니 잊는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판단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는데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었어요. 없는 걸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걸 못 찾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더 열심히 기억하는 대신 찾기 쉬운 자리에 두면 될 일이었어요.
기록이 대화 안에만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저는 그동안 모든 걸 대화 안에 두고 있었어요. 무엇을 만들 건지도, 왜 이렇게 하기로 했는지도, 어디서 막혔는지도 전부 AI 와 주고받은 말 사이에 섞여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편했어요. 대화창 하나가 곧 작업 기록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대화라는 그릇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더라고요. 하나는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며칠 이어붙인 대화는 스크롤이 한참인데, 검색을 해도 비슷한 말이 여러 번 나와서 어느 게 최종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워요. 다른 하나는 갈아탄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너무 길어지거나 흐름이 엉키면 새 대화를 열게 되는데, 그 순간 앞의 맥락은 사라진 것과 같아집니다.
그래서 관점을 하나 바꿔봤어요. 이걸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인수인계의 문제로 보기로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이 작업을 이어받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줘야 할까요. 그 사람이 바로 내일의 저였고, 필요한 건 대화 전체가 아니라 5분 안에 복귀할 수 있는 최소 정보였어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은 안 남겨도 될까요?
몇 번 해보면서 남길 것을 세 가지로 줄였어요. 항목을 더 늘리면 어느 순간부터 아예 안 쓰게 되더라고요.
-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한 줄. 파일 이름이 아니라 목적을 적습니다.
- 방금 끝난 것 하나와 다음에 할 것 하나. 딱 하나씩이면 충분해요.
- 막혔던 지점과 그때 시도한 것. 해결이 안 됐어도 시도한 걸 같이 적습니다.
이 중에 제일 값진 건 세 번째였어요. 막힌 지점만 적어두면 다음 날 똑같은 시도를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됩니다. 어제 이미 해보고 안 됐던 방법을 오늘 또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무엇을 해봤는지까지 한 줄 붙여두면 그다음 칸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패한 시도는 지워야 할 흔적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길이었어요.
반대로 안 남겨도 되는 것도 정리했어요. 코드 전문은 적지 않습니다. 파일에 이미 그대로 있으니까요. AI 가 해준 긴 설명도 통째로 붙여넣지 않아요. 다시 물어보면 또 해주고, 붙여둔 설명은 대부분 다시 안 읽더라고요. 잘 풀린 작업의 자세한 과정도 뺐습니다. 순조로웠던 일은 다시 볼 일이 거의 없어요.
기록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내일의 나에게 주는 인수인계예요.다음 날의 나는 어제의 판단을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 가깝습니다.
화면은 어떻게 남기고, 파일은 어디에 둘까요?
글로 적기 애매한 것도 있어요. 화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오류 창이 떴는지 같은 건 문장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이럴 때는 그냥 찍는 게 빠릅니다. 저는 막힌 화면 한 장, 제대로 나온 화면 한 장 정도만 찍어두는 편이에요.
대신 한 가지는 지킵니다. 파일 이름에 날짜와 무슨 화면인지를 넣는 거예요. 캡처 프로그램이 지어주는 이름 그대로 두면 몇 장만 쌓여도 뭐가 뭔지 못 찾습니다. 저는 앞에 날짜를 붙이고 뒤에 화면 이름을 붙이는 식으로 통일했어요. 열어보지 않고 이름만으로 고를 수 있으면 성공입니다.
파일을 어디에 두느냐도 생각보다 컸어요. 처음에는 휴대폰 메모 앱에 적었는데 얼마 못 갔습니다. 메모는 메모대로 쌓이고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굴러가서 둘이 따로 놀더라고요. 그래서 프로젝트 폴더 안에 기록 파일을 하나 두고 거기에만 적기로 했어요. 작업하러 폴더를 열면 어차피 눈에 들어오니까 자연스럽게 보게 됩니다.
마지막은 시간 규칙이에요. 하루 끝에 3분만 씁니다. 문장을 다듬거나 빠짐없이 적으려고 하면 며칠 못 가서 손을 놓게 되더라고요. 세 줄이면 충분해요. 오늘 무엇을 했고, 어디서 멈췄고, 내일 무엇부터 할지. 맞춤법이 틀려도 그냥 둡니다.
이 기록이 쌓이면 무엇이 보일까요?
몇 주 지나서 예상 못 한 게 보였어요. 파일을 위에서 아래로 훑는데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는 겁니다. 저는 늘 비슷한 자리에서 멈춰 있었어요. 설정 파일의 경로, 권한, 그리고 실행 환경의 차이. 매번 새로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같은 문제였습니다. 그날그날은 안 보이던 게, 한 화면에 모아 놓으니 보이더라고요.
그게 다음에 배울 것을 알려줬어요. 무엇을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에 저는 늘 대답을 못 했는데, 기록이 대신 답해준 셈이에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찾아다닐 필요가 줄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막힌 자리가 목록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부수 효과가 하나 더 있었어요. AI 에게 상황을 설명하기가 쉬워졌습니다. 새 대화를 열 때 그 기록 몇 줄을 그대로 붙여넣으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대화 밖에 남긴 기록이 다음 대화의 시작점이 되는 구조예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바이브코딩을 하면서 조금 나아졌다고 느낀 순간은 프롬프트를 잘 쓰게 된 날이 아니었어요. 어제 멈춘 자리로 오늘 바로 돌아올 수 있게 됐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게 되돌아올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잘 시키는 것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게 먼저였습니다.
- 어제 어디까지 했는지 안 떠오르는 건 기록이 대화 안에만 있어서예요.
- 남길 건 세 가지, 그중 막힌 지점과 시도한 것이 제일 값집니다.
- 기록은 프로젝트 폴더 안에 세 줄이면 충분하고, 3분이면 끝나요.
같이 보면 좋은 글
다음 편에서는 새 대화를 열 때마다 같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써보려고 해요. 프로젝트의 배경과 규칙을 어디에 어떻게 적어두면 AI 가 매번 처음부터 묻지 않는지, 제가 쓰고 있는 파일 하나를 그대로 열어 보이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